3년 7개월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1기 사령탑으로서 훌륭히 을들을 위한 길 위에서 동거동락했던 우원식 위원장이 2기 사령탑이 구성되며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원식 위원장의 길었던 3년 7개월간의 여정을 짧은 인터뷰로 담았습니다.
편집자 주

 

Q. 을지로위원회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면 첫 발을 뗀 ‘남양유업 사태’일 것입니다. 이 때 이야기를 간략히 해 주신다면?

A. 뉴스로 먼저 세상에 알려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리점주가 본사 직원의 폭언을 녹취해서 방송에 알렸던 사건이었죠. 나이가 한참 어린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온갖 폭언을 하며 욕설을 하고... 차마 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현장에 갔었는데, 대리점주들과 본부 사이의 갈등의 골이 매우 심각하게 깊었습니다.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들이 본사 앞에 우유를 쌓아놓고 농성하고 있는데 본 체도 안하고 지나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대화와 결렬을 여러 차례 거듭했고, 그때 마다 중재하고 조율을 하며 마침내 타결되었을때의 기쁨은 아직도 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공정을 막는 제도개선은 정부여당의 반대가 참 심했기 때문에 ‘남양유업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내기 등 불공정 행위를 유형화 하여 금지한 대리점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Q. 을지로위원회 현장에 나가보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을텐데, 그 중 가장 기억나는 말은 무엇이었나요?

A.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우체국택배 집배원, 인천국제공항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 증언을 통해 울먹거리며 “우리가 기계가 아니잖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는 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기계가 아니라는 말이 노동자들에겐 얼마나 슬픈 말입니까? 순간 전태일 열사가 노동법전을 손에 쥐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했던 7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는 자괴감과 분노가 섞여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Q.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최근 직고용이 됐습니다. 3년 간 을지로위원회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했고, 사실 을지로위원회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직고용 경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A. 과거에는 국회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 시설 관리를 하시는 분들 모두가 국회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 ‘작은 정부’를 만든다며 청소, 시설관리, 경비 등을 외주용역을 주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을지로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도 사실 청소노동자 분들은 국회에서 일하다 보면 무조건 뵙게 되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너무 처우가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이 분들은 다시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당시 국회의장으로부터 약속을 받기도 했지만 번번히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국민 여러분께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주셨기에, 이것은 국회가 좀 더 열심히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정치란 가장 약한 사람들의 가장 강한 무기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정치가 투표를 통해 바뀌었는데 약간 국민의 삶 역시 바꿀 수 있다는 징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원 이후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첫 정책 사업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기획재정부 부총리에게 “정규직화 동의 안 하면 예산안 통과 안 시킬것”이라고 강하게 맞서 결국엔 기재부가 동의하여 2017년도 예산안에 청소노동자 분들의 직고용 예산이 포함될 수 있었지요.

 

이 일은 전적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들어 주시고, 야당 예결위원장을 만들어 주신 것도 결국엔 국민 여러분께서 야당에 힘을 실어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의 성과는 국회의 성과가 아니라 국민의 성과라고 봅니다.

 

Q. ‘현장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현장을 거의 빠지지 않고 방문하셨습니다. ‘현장왕’이라는 별명, 마음에 드시나요?

A. 하하하... 영광입니다! 사실 제가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가며 확신한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든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절대 대변할 수 없고, 담을 수도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을지로위원회가 만들어진 19대 국회 구성상, 우리가 을들, 서민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필요한 제도를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갖는 권한으로 현장의 불공정, 부당함을 고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현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Q. 을지로위원회 활동은 국회에서의 활동도 있었지만 결국 현장을 직접 찾아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하는 ‘현장형 정당’으로 더불어민주당을 발돋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하나 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각 가정에 방문하거나 서비스센터에서 고객의 제품을 수리해주는 서비스직의 CS기사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새겨진 명함과 복장을 입고 다니지만 전부 간접고용 비정규직, 즉 하청업체 직원들입니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노조를 만들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100명 정도가 모였는데 노조위원장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실태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100여명의 기사들이 모두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노력 끝에 19대 국회 당시 노조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삼성전자서비스는 여러 편법을 동원해 노조를 와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이 있었다고 판결한 것은 이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같은 경우는 더 심각한데, 총 7천 명의 직원 중 600명을 제외하면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을 갔었는데, 공항공사 쪽에서 “정규직을 만나는 게 아니니 회의공간을 대여해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국회의원 15명이 들어오니 공항공사에서 부랴부랴 회의공간을 마련해 줬습니다. 회의실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다가 “새벽에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며 또 눈물바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 사람들은 어디 가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으니 도와달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을 만큼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늘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힘없고 백 없는 보통 서민, 갑의 횡포로 눈물 흘리는 ‘을’들을 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Q. 을지로위원회에도 분명 한계점이 있을텐데요.

A. 과거 19대 국회 당시에는 여대야소 국회였기 때문에, 여당이 반대하면 뭘 어떻게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합심해서 무슨 법을 내자, 이렇게 이야기해도 정부여당이 반대하면 통과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한계점들이 20대 국회에서는 말끔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제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가맹사업법 등 19대 국회에서 乙을 위한 법안 14개를 통과시켰지만 전체 사회 문제로 놓고 보면 1%도 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 1, 2월에는 국민 여러분의 피부에 와닿는 민생 정책을 입법화하고, 현장에 팀을 나눠 찾아가 사람들 속에서 의제화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결국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이 곧 정권교체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Q. 곧 대선 정국이 시작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을지로위원회는 지금까지 모든 당권 주자들이 우리당의 훌륭한 핵심 가치 중 하나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 핵심 가치를 그대로 이어가야 합니다. 정치 현실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국민들을 위한 가장 강한 무기가 되고자 했으며, '좌'로 갈 것인가, '우'로 갈것인가 하는 계산적인 구상이 아니라 '아래'로 가자는 구호에서도 드러나듯 정치의 중심에 삶을 두자는 을지로위원회의 가치, ‘을’을 위하는 가치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을’들의 눈물을 닦지 못하면 정권교체도, 그 의미도 없습니다.

 

Q. 마지막으로 <월간 을지로> 독자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일종의 ‘법칙’같은 것이 있다면, 현장에 처음 찾아가면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여긴 뭐 하러 왔느냐”, “또 선거 때 다 되었느냐”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다가도, 저희가 계속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함께 해결하기 시작하면 감정이 많이 누그러지고, 현장에 계신 분들이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결국 기존의 정치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 삶의 현장에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존재했을까요? 결국엔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정치를 통해 나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감정이 누그러지고, 웃기 시작하고, 함께 연대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CS기사였던 고 최종범 씨가 유서에 남긴 글이 있습니다. “왜 죽어라 일을 해도 배고픈 것이냐”, “힘들고 배고팠다”. 왜 우리 사회는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재벌대기업의 곳간은 쌓여만 가는데, 왜 일선 현장에서 죽어라 일하는 노동자들의 지갑은 비어만 갈까요?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온 노동자의 유서에 “배고팠다”는 글이 남겨지는 사회가 정녕 올바른 사회일까요?

 

스크린도어에서 명을 달리한 19살 청년의 가방 속에 있던 컵라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통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착취당하는 그런 불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가를 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직은 내려놓고, 존경하는 이학영 선배님께 위원장직을 인계하지만, ‘을’들을 위한 길 위에서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을’들을 위한 국회의원으로서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을지로위원회  minjooeuljir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