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규제완화 팡파레 속에

국가의 책임은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 어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지난 3월 20일 있었던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이어 다시 규제완화를 역설했습니다. 1차 회의와 내용상 별로 달라진 게 없었던 이번 회의는 대통령이 추석 명절을 앞둔 국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 그러나 우리 을지로위원회는 ‘규제는 눈 딱 감고 확 풀어야 한다’, ‘국회의 법개정을 언제까지 기다리겠나 정부가 먼저 하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그 내용을 밝히고자 합니다.

○ 을지로위원회는 박대통령의 보여주기 식 규제완화 쇼의 이면에 가려져버린 ‘국가의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개월 전 세월호참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적폐가 되어 수 백 명의 목숨을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총리실, 해수부, 해경, 안행부 등 정부의 주요 부처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부처의 수장들은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가가 국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세월호의 아픔이 다 가시지도 않은 지금, 유족들의 울분이 아직도 생생한 지금 대통령은 다시 규제완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다시는 국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부족할 판에 대통령은 규제를 풀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 경제살리기의 필수과제라고 치켜세우는 박근혜표 규제완화의 이면에는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국가책임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대통령은 노동규제를 개혁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그 실체는 오리무중입니다. 오히려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또 그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고 있어 박근혜 정권 들어 기업의 임금체불액은 점점 늘어 2014년 현재 체불임금액은 7,827억(매해 7월 기준 누적)으로 지난해보다 10% 가량 늘어난 상황입니다.

○ 거대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의 아픔은 손톱 밑 가시 수준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것을 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시장 상인들에게 생닭을 비닐포장 없이 팔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 ‘갑’의 횡포에 시달리며 저소득층으로 몰락해 가는 자영업자들을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 을지로위원회는 안전과 생명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제라고 부르면서 개혁해야할 대상으로 삼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급증에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 최근 박근혜정부 제2기 경제정책이 연일 발표되고 있습니다. 카지노를 허가하고, 호화크루즈를 다니게 하겠다고 합니다. 부채를 늘려 집을 사라고 하고,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다시 세금을 깎아 주겠다고 합니다. 노동자들 노후생활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을 증권시장에 몰아넣는 퇴직연금제도 개편을 하겠다고, 규제완화를 할 테니 투자 하라고 합니다. 을지로위원회는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을 카지노믹스(Casinomics, 도박경제)라고 합니다. 국민의 삶을 돈놀이의 판돈으로 쓸어 넣어버리려는 위험하고 나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 을지로위원회는 1년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민생현장을 다니면서, 갑의 횡포에 괴로워하는 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민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을’들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과 제도를 “규제”라고 부르면서 없애자고 한다면 을지로위원회는 어떤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그것과 단호히 싸워나가겠습니다. 그것만이 다시는 국민이 국가의 책임을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정치인의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국민여러분, 대통령의 자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해야 되는 일을 해 내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대통령은 99%가 아니라 국민 100%의 행복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 그렇다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며 농성을 진행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거리로 쫓겨 나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하루 밥벌이에 목숨이 걸려 대기업의 횡포에 숨죽일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통령이기도 해야 합니다.

○ 대통령은 규제완화에 찬성하는 국민만 따로 불러서 만났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하는 저 낮은 곳의 수많은 국민들은 경찰들에게 막혀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 을지로위원회는 대통령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한 번 뱉은 말을 중천금처럼 여겨야 하는 것은 장관이나 관료들이기 이전에 바로 대통령 자신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2014. 9. 4.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